Typica, Bourbon, Geisha 커피나무 품종별 특징

같은 아라비카라도 품종이 바뀌면 나무의 표정이 달라지고 잔의 문장도 달라진다. Typica는 단정하고 길게 이어지는 선을, Bourbon은 둥글고 단정한 단맛의 골격을, Geisha는 꽃잎을 흩뿌리듯 화사한 향을 세운다. 품종은 테루아와 농법, 가공과 로스팅을 매개하는 문법이며, 생산성·병해저항성·노동의 강도 같은 현실의 변수와도 맞물린다. 이 글은 세 품종의 역사와 생육 특성, 향미와 재배·가공·로스팅의 전략을 입체적으로 정리하여, 소비자가 라벨을 해석하고 생산자가 선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 아라비카 계보와 세 품종의 자리: 예멘 토착계통에서 갈라진 두 가지 줄기와 하나의 예외다
오늘날 상업 품종의 뿌리는 대체로 예멘의 토착계통에 닿아 있다. 17~18세기 예멘에서 반출된 씨앗은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졌고, 그 과정에서 Typica와 Bourbon이라는 두 굵은 줄기가 형성되었다. Typica는 인도→인도네시아→중남미로, Bourbon은 프랑스령 부르봉섬(레위니옹)에서 적응·변이된 뒤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되었다. Geisha(Gesha)는 동아프리카 고지대에서 수집된 유전적 자료가 파나마에서 재해석되며 명성을 얻은 사례로, Typica/Bourbon 직계와는 다른 계통적 배경을 지닌다. 이 계보를 이해하면 라벨의 산지·수고·생육 습성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지고, 컵에서 만날 수 있는 향미의 방향성도 가늠할 수 있다.
2. Typica: 선형의 균형과 섬세한 구조가 잔에서 길게 이어진다
Typica는 비교적 키가 크고 원뿔형 수관을 이루며, 마디 간격이 긴 편이라 작업 동선이 넉넉하다. 수확량은 현대 개량종보다 낮은 경향이 있으나, 균일한 체리 성숙과 단정한 씨알이 로스팅 재현성을 높인다. 향미에서는 깔끔한 산미와 단맛의 균형, 카라멜·견과·코코아의 바탕 위에 미세한 꽃 향이 레이어처럼 얹히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고지대 일교차가 큰 곳일수록 산미의 윤곽이 뚜렷하고 피니시가 길게 남는다. 관리 측면에서는 커피 녹병(CLR)과 일부 해충에 취약할 수 있어, 그늘 식재와 통풍·전정을 통해 잎의 스트레스를 낮추는 관리가 중요하다. Typica는 ‘품질의 기준선’을 정립해온 품종이며, 잔에서는 선형의 질서가 인상적이다.
농가 경제에서 Typica의 가치는 안정된 프리미엄과 로스터의 신뢰에서 나온다. 수확량이 낮아도 컵의 선명함과 재현성으로 장기 거래가 이어질 수 있고, 라벨의 투명성이 높을수록 소비자는 ‘좁지만 깊은’ 맛을 선택할 명분을 얻는다. Typica는 크게 말하지 않고 오래 남는 품종이다.
3. Bourbon: 둥근 체형과 단맛의 골격이 만든 ‘정직한 만족’이다
Bourbon은 Typica와 비교해 마디 간격이 짧고 체리 밀집이 높은 편이라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과실의 당도와 점도가 높아 워시드에서는 깔끔한 단맛, 허니·내추럴에서는 농밀한 과일감이 잘 드러난다. 컵 노트에서는 설탕을 볶은 듯한 카라멜, 우유초콜릿, 부드러운 산미가 핵심 골격을 이루며, 고도·토양·가공에 따라 붉은 과실과 스톤프루트의 레이어가 포개진다. 병해저항성은 전통 개체군 기준으로 높지 않지만, 농장 차원에서 전정·환기·위생과 선택적 방제를 병행하면 품질과 생산성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Bourbon은 ‘넓게 사랑받는 균형’의 품종이며, 로스터에게는 블렌드·싱글 모두에서 쓸모가 많은 든든한 베이스다.
경제성에서는 Harvest/ha와 프리미엄의 합이 중요하다. Bourbon은 높은 컵 잠재력과 양호한 수확량으로, 산지의 변동성 속에서도 ‘정직한 만족’을 제공한다. 그래서 중남미의 다수 농가에서 기본 품종으로 자리 잡아 왔고, 소비자는 Bourbon 표기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향미 기대치를 설정할 수 있다.
4. Geisha: 꽃의 언어와 실크 텍스처가 만드는 ‘기억되는 한 잔’이다
Geisha는 동아프리카 고지대에서 수집된 재료가 파나마의 고산 테루아에서 재발견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수형은 비교적 키가 크고 잎이 길며, 수확량은 관리 난도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컵에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자스민·베르가못·백차를 연상시키는 고운 향, 복숭아·살구·열대과일의 과실감, 실키하고 롱한 피니시가 대표적이다. 워시드에서는 선명함과 투명도가 살아나고, 에어로빅/아나에로빅 발효를 정교하게 관리한 내추럴·허니에서는 향의 폭과 길이가 확장된다. 미세기후에 민감하여 고도·그늘·바람·토양·건조 인프라까지 ‘전 구성요소의 미세조정’이 요구되며, 이 정밀함이 곧 희소성과 프리미엄의 근거가 된다.
Geisha의 경제학은 ‘높은 리스크·높은 보상’의 구조다. 재배·가공·로스팅·브루잉 어느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장점이 꺾이지만, 성공적으로 맞아떨어지면 가격과 기억 모두를 획득한다. 소비자에게 Geisha는 ‘경험의 커피’이며, 생산자에게 Geisha는 ‘역량의 시험대’다.
5. 테루아·가공과의 상호작용: 같은 품종도 고도·토양·발효에 따라 다른 문장을 쓴다
품종은 시작점일 뿐이며, 고도·일교차·강우·토양 물리·화학·생물성, 그늘·바람, 그리고 가공·건조의 설계가 문장을 완성한다. Typica는 고지대 워시드에서 산미와 단맛의 ‘선형 균형’이 가장 명확하며, 내추럴에서는 견과·코코아의 저음역이 올라온다. Bourbon은 허니·내추럴에서 점성 있는 단맛과 과일감이 돋보이고, 워시드에서는 카라멜·초콜릿 기반의 안정적 균형을 만든다. Geisha는 워시드에서 가장 투명하며, 실험적 발효에서는 향의 폭발력을 키우되 과발효·이취 리스크를 정밀 제어해야 한다. 건조는 세 품종 모두에서 결정적 요소이며, 두께·뒤집기·일사·그늘·야간 결로 제어가 피니시의 길이를 좌우한다.
토양에서는 유기물과 입단 구조, pH 5.5~6.5 범위의 안정, Ca–Mg–K 균형이 공통 기반을 이룬다. Geisha는 근권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하여 배수와 통기, 섬세한 그늘 설계가 필수적이다. 결국 좋은 향미는 기후·흙·손의 합이며, 품종은 그 합을 번역하는 문법이다.
6. 병해·기후 리스크와 농업경제: 품종 선택은 맛과 생존의 타협점이다
커피 녹병(CLR), 베리보렐(CBB) 같은 병해충, 가뭄·집중호우·고온 등 기후 스트레스는 품종 선택의 전제를 이룬다. Typica와 Bourbon 전통 개체군은 병해에 취약할 수 있으나, 농가·협동조합 차원의 통합 방제(IPM)·전정·환기·위생 관리로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 Geisha는 고도·미기후 의존도가 높아 나무당 관리 시간과 인프라 비용이 크다. 생산자는 품종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위험을 분산하고, 프리미엄 로트와 안정적 로트를 함께 운영한다. 계약·인증·트레이서빌리티는 가격의 바닥과 천장을 동시에 정의하며, 장기 거래는 품종 전환·갱신 주기의 비용을 흡수하는 안전망이 된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좋은 품종’은 없고, ‘현장에 맞는 조합’만 있다. 맛과 생존의 타협점을 잘 찾는 농장이 다음 해에도 같은 잔을 선사한다.
7. 로스팅·추출 전략 가이드: 품종의 언어를 왜곡 없이 번역한다
로스팅에서 Typica는 비교적 넓은 스윗 스팟을 가지며, 중·경열량 프로파일에서 산미와 단맛이 고르게 선다. Bourbon은 카라멜라이제이션을 한 단계 더 밀어도 바디가 무너지지 않으며, 배기·ROR의 안정성이 컵의 청결감을 지킨다. Geisha는 라이트~미디엄에서 향의 정수가 살아나며, 건조–마일라드 전환의 과열을 피하고, 디벨롭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가 중요하다. 추출에서는 드립 기준 92~94℃, 1:15~1:17 범위를 기점으로 Typica는 균형, Bourbon은 점성·바디, Geisha는 향·투명성 쪽으로 미세 조정한다. 에스프레소에서는 Geisha의 향을 살리려면 저온·롱 레시오(예: 1:2.2~1:2.5)와 미세한 분쇄 균일성 관리가 효과적이다.
8. 라벨 읽기와 트레이서빌리티: 품종명은 맛의 약속이자 관리의 이력이다
라벨에서 확인할 첫 항목은 품종명과 더불어 고도·마을/농장·가공·수확연도다. Typica/Bourbon/Geisha 표기가 선명할수록 기대하는 향미의 방향을 미리 그릴 수 있고, 같은 품종의 다른 산지를 비교하며 학습할 수 있다. 협동조합·증명 문서·컵 점수·결점·수분·밀도 등 데이터는 ‘말의 무게’를 더한다. 직거래 표기라면 계약의 장기성·위험 분담·프리미엄의 사용처 같은 맥락이 함께 제시되는지 확인하면 좋다. 소비자의 질문은 시장에 신호를 보내며, 생산자의 기록은 가격의 이유를 증명한다. 라벨은 장식이 아니라 약속이다.
9. 시대별 요약표
| 시대 | 품종·시장 흐름 | 향미·생산 영향 |
|---|---|---|
| 17~19세기 | 예멘 계통 전파, Typica/Bourbon 확산 | 전통 품종의 기준선이 형성되고 지역별 캐릭터가 분화됨 |
| 20세기 | 병해 확산·개량 노력, 생산성 중심 농정 | 일부 지역에서 전통 품종 축소, 품질·생존의 균형 모색 |
| 2000s | 스페셜티 수요 확대, 싱글오리진·품종 표기 보편화 | Typica/Bourbon의 재평가, 실험적 가공 확산 |
| 2010s~현재 | Geisha의 글로벌 부상, 투명성·데이터화 | 프리미엄과 리스크 관리의 정교화, 테루아 해석 심화 |
한줄정리
Typica는 균형의 선을 긋고, Bourbon은 단맛의 바탕을 채우며, Geisha는 향의 하이라이트를 남긴다. 세 품종은 서로를 대체하지 않고 서로를 설명한다. 농부는 품종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로스터는 품종의 언어를 왜곡 없이 번역하며, 소비자는 라벨을 통해 이 문장을 읽는다. 나는 좋은 품종을 ‘운 좋은 씨앗’이 아니라 ‘꾸준한 조정의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미세하게 다른 날씨 속에서도 같은 얼굴로 돌아오는 잔, 그 재현 가능한 선함이야말로 우리가 품종에게 기대하는 최고의 미덕이다.
✔ 한줄정리: 티피카·부르봉·게이샤는 각각 균형·단맛·향이라는 축을 세우며, 테루아와 손길의 미세조정이 그 축을 한 잔의 문장으로 완성한다.